관계 쌓아가기

관계 쌓아가기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쌓아간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며

 

말로는 하지 않지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제일 친한 친구'를 가지길 원한다.

 

예전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제일 친한 친구'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어제는 정말로 친했던 친구가 한순간 같이 있기도 싫은 상대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결같은 '제일 친한 친구'에 집착하는 것은 상대나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깊은 관계를 가진 친구, 나의 대부분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삶을 살아가는데 크나큰 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고민을 이야기했을 때 그것을 고소해하거나 비웃지 않고 순수하게 받아들여

 

주는 친구, 가식 가득한 위로가 아니라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아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친구. 이런 친구가 손에 꼽을 만큼이라도 있는 사람은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친구는 정말 선물처럼 어딘가에서 뚝 떨어지는 것일까?

 

아니다. 이런 신뢰관계를 쌓기까지 정말로 많은 사건, 사고가 휘몰아친다.

 

먼저 처음에 관계를 쌓아간다. 이 때는 서로 낯을 가리고 간을 보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서로에게 좋은 면만 보여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 상태로 계속 이어지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관계가 어느 정도 쌓였다고 생각하면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이 정도는 더 다가가도 되겠지? 이제 이 정도는 나의 모습을 보여도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맞다. 그렇게 서로 가까워지는 시간은 필요하다. 

 

이 과정이 없다면 관계가 가까워 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거리를 둔 피상적인 인간관계만을 가진 채, 같이 있지만 서로에게 위안이 되지 못하는 차가운

 

관계에 머무르게 된다. 

 

그렇게 서로에게 다가간다. 적정선이 어딘지 모른 채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상대에게 다가간다. 

 

당연히 나의 기준과 상대의 기준은 다르다. 그러다 보면 그 어긋난 기준안에서 불꽃이 튄다. 

 

한 사람은 자기 기준에 상대가 너무 다가와서 참다가 참다가 폭발하고, 

 

상대는 우리 사이에 그 정도도 이해해주지 못하냐며 서운해한다. 

 

그렇게 냉전의 시간이 시작된다. 

 

이 냉전의 시간은 관계가 끊어진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엄청난 마그마를 속에서 끓이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식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휴화산과 같다.

 

서로 무시하려 애쓰고, 쿨한 척 상대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척을 하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어댄다. 그것이 다가가고 싶은데 자존심 때문에 못 다가가는 상황이든

 

아니면 반대로 저 사람의 행동, 모습 하나하나에 트집을 잡고 싶어서 그렇다. 

 

이 두 가지는 반대의 모습 같지만 사실 같다. 

 

우리는 흔히 사람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한다. 

 

하지만 냉전 상태의 관계는 서로에게 무관심할 수 없다.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정말로 끊어진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마그마처럼 그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에너지가 있다면

 

그것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신호이다. 비록 그것이 상대에 대한 미움의 형태라도 말이다. 

 

잘 생각해보자. 정말로 미운가? 그 사람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거슬리고 미운가?

 

아니면 예전과 달라진 관계가 서운하고 괜히 혼자 잘 지내는 것 같이 보이는 것에 심술이 나는 것인가..

 

대개의 경우 두 번째일 것이다. 나의 경험은 그렇다. 

 

이 경우 둘 중 한쪽의 노력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어떠한 계기로 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길 때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무엇을 기대했고, 무엇이 서운했고, 무엇 때문에 돌아서게 되었는지..

 

그리고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상대와 나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상대의 입장에서는 서운하고 화가 날 수도 있겠다는 이해를 하게 된다. 

 

이러한 기회로 상대에 대한 정보를 쌓게 된다. 

 

그리고 상대는 냉전 기간을 통해서 나의 옹졸함과 부족함을 보았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서로의 바닥을 본 둘은 다른 이들과 있을 때 보다

 

같이 있을 때 편안하다. 

 

이 사람은 나의 이런 면도 알고 있는데 지금 함께하고 있는 것이니까..

 

우리가 관계에서 불안감을 가지는 것은 '내가 이런 내 모습을 보였을 때 상대가 

 

실망하고 도망가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나의 옹졸한 본모습을 보았는데도 지금 나와 함께 여기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편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다. 

 

이 사람은 나의 모습을 알고도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서로에게 같이 있기만 해도 의지가 되는 기간이 있다. 

 

하지만 이 기간이 끝까지 갈까? 당연히 아니다. 

 

위에서 겪었던 일을 또 겪을 것이다. 

 

관계가 틀어지고 냉전 상태가 이어지다가 또다시 이어지고 더 깊어지고..

 

이런 과정을 몇 번이고 거치다 보면 그 둘은 그냥 있어서 좋고 말고 가 아니라 

 

정말로 그냥 있어주는 별 다른 계산이나 생각 없이 말해도 

 

아.. 얘는 원래 이러니까..라고 받아들여주고 그 사람도 나에게 별다른 계산 없이 

 

말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이 글로 써놓으니 빨리빨리 진행되는 듯싶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잠깐 좋았다가 냉전 길었다가 다시 화해하고 또 냉전, 그리고 화해..

 

이 시간 안의 나의 감정은 그 어떤 단어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 

 

정말로 휴화산 속의 '마그마'다.

 

서러움 그리움 미안함 서운함 미움 증오.. 뭐라 하나 특정 지을 수 없는 감정이

 

나를 휘감는다. 

 

그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잠시 잠잠해진 듯하다가도 다시 눈에 보이면

 

마그마가 요동친다. 하나로 특정 지을 수가 없어 대처할 수도 없다. 

 

그냥 그 감정에 휩싸이면 심란하고 찢어지는 마음을 붙잡고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관계가 좋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즐거워진다. 

 

이것은 나의 경험이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내가 느껴온 것들이다. 

 

그래서 모두에게 적용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깊어진다는 것은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한다. 

 

굉장한 감정 소모와 시간과 노력을 가지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만들기 시작한다는 것이 이제 슬며시 두렵다. 

 

한번 그런 관계를 맺으면 어떠한 행복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 과정이 너무 아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섣불리 발을 내디딜 수 없다. 

 

관계가 좋을 때는 앞으로 올 냉전의 시간이 두려워지고,

 

지금 냉전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이것이 지나면 관계가 깊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다음 어쩌면 몇 번이 될 과정의 반복이 두려워 차라리 냉전을 깨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깊은 관계의 친구가 손에 꼽을 만큼이라도 있다면 

 

우리의 삶은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나아가자.

 

너무도 아픈 시간들이 있겠지만 그것들은 지나가는 과정들이다. 

 

그 뒤에는 든든한 내 편이라는 '진짜 친구'를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주변을 둘러보자.

 

친구였다가 지금은 서운함을 느끼는 그 친구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길 원하고 있지 않은지

 

내가 지금 느끼는 미움이라는 감정이 정말로 미움인지 아니면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인지 말이다. 

 

그리고 냉전 중이라면 이제 그만 가서 대화해보길 바란다. 

 

그 냉전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생각보다 어이없이 풀린다. 

 

너무나도 사소한 오해로 벌어진 경우가 많으며 그 당시 각자의 상황이 안 좋은 시기가 

 

겹쳐서였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다시 이야기해보자. 그것이 그 사람을 '선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아픔이 동반되어야 깊어진다. 그리고 단단해진다. 

 

이러한 관계에는 이간질도 먹히지 않는다. 

 

이미 서로에 대해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정말로 '나의 편'인 것이다. 

 

그러니까 대화하라.. 내가 지금 마음에 품고 있는 그 사람

 

나의 신경을 긁는 그 사람과 가서 이야기해봐라..

 

그 한 발자국이 당신에게 '진정한 친구'를 선물해 줄 것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