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군대에 군의관으로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군대에서 참으로 애매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저는 레지던트를 그만두고 수도원 들어갔다가 신학교 입학만 하고 다니지도 못하고 바로 군대에 군의관으로 끌려갔거든요. 그래서 의사면서도 수사이기도 하고 신학생이기도 했죠. 부대 안에서는 군의관이라는 위치가 명확했지만 군성당에서는 조금 애매했습니다. 성당에서 신학생이나 수사라고 하면 대부분 존대를 해주십니다. 그래서 가끔은 장교가 병사에게 '학사님'이라며 존대를 하는 희안한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이 군성당입니다.
그런데 저는 신학생이나 아직 신학교를 다닌 적은 없고, 수도원에서 살다왔으나 반년도 안되어 딱히 수사라는 호칭도 어색하던 때로 교리적인 지식또한 별로 없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신자분들이 '수사님', '학사님'이라고 부르시면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렇게 불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자세한 속 사정을 모르는 신자분들은 계속해서 저를 '학사님'이라고 부르며 존대해 주셨습니다. 의사이면서 수도원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단한 결심을 했다고 추켜세워주시는 것들은 덤이었죠.
저는 그런 반응들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아니 제가 부담스러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가 그럴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를 '겸손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그런 환경에서 살다가 한 번은 그 이미지가 깨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전입온 간부가 저를 하대 했던 것이었죠. 이건 군대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분은 저보다 계급도 높았고 나이도 많으셨으니까요. 정말로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 때는 그게 마음 상하는 일로 다가왔습니다. 성당에서 학사님이라고 불리며 존대를 받다가 하대를 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었으니까요. 지금은 너무 창피한 생각이지만 그 때는 내가 신학생인걸 모르시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퍼뜩 든 생각이 '나는 내가 지금까지 신학생이고 수도자라는 타이틀을 나에게 과분한 부담스러운 호칭이라고 생각하는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 위치를 즐기고 있었구나..'라는 것이었죠.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있죠. 딱 그 꼴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저에게 존대를 해 주셨던 것은 저라는 사람에 대한 존대라기 보다는 하느님을 따르겠다고 다른것을 포기한 수도자라는 것에 예의를 표해 주신 것인데 저는 어느 새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 생각을 했을 때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저라는 사람의 이미지에 상반되는 모습이었으니까요. 학사님이라는 호칭이 나에게 과분하다고 생각하는 '겸손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 자리를 즐기고 은근히 사람들에게 존중받기를 기대하고 있는 인간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제가 가진 자아상과 진정한 제 모습과의 괴리감을 느끼고 나니 너무 부끄러워 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한번 느끼고 알았다고 해서 내가 쉽게 고쳐먹을 수 있는 생각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 동안은 안 그런척 하는 저를 바라보면서 얼마나 가증스러움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속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저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그 괴리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아시나요? 부대가 바뀌고 성당을 민간 성당을 다니면서 저절로 나아지게 되었습니다. 왜냐고요? 그 성당에서는 제가 신학생인줄 아는 분이 없었거든요. 그러니 저를 존대하는 분도 없고 그냥 성당에 착실하게 나오는 젊은 청년 정도로만 편하게 대해 주셔서 저 또한 별 다른 기대없이 편하게 성당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그 문제가 해결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과는 다른 '부족한 나의 모습'을 마주하고 나면 일단은 부정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이라는 건 알 수 밖에 없을 거에요. 하지만 여기서 갈라지는 것은 그 부끄러운 모습도 내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쳐나가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그런 모습은 부끄러운게 아니라 당연하고 괜찮은 것이라며 애써 자기 합리화를 하고 문제 의식 없이 살아가느냐의 차이일 겁니다.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부족한 것은 고쳐 나가려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겁니다. '저건 내 모습이 아니야'라는 회피나 '다들 그러고 사는데 뭐!'라는 자기합리화는 내 삶의 발전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죠. 먼저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발견해야 거기부터 고쳐 나갈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러니까요.. 인정하기 너무도 싫은 나의 모습을 발견하더라도, 거기에서 눈을 돌리거나 자기 합리화를 하며 무시하기 보다는 인정해 보는게 어떨까요? 내가 생각하는 옳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말이죠. 그렇게 힘들지만 한발자국씩 나아갈 때 우리는 좀 더 여유롭고 다른 사람들을 품어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 가고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 갈 수 있겠죠. 그렇게 함께 한걸음씩 나아가길 바라며 모두들 화이팅입니다~!!😁😁
'내 마음 돌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안에 불씨가 꺼져 갈 때.. (0) | 2022.05.24 |
---|---|
습관은 시작이 어렵다. (0) | 2022.05.15 |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0) | 2022.04.11 |
한쪽 면만 보고 부러워 하지 않기 (0) | 2022.04.10 |
삶에 숨 구멍 두기 (0) | 2022.03.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