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일에서 의미 찾기
코로나 병원에서 일을 시작한 지 11일이 되어 갑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이곳에 와서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지만 이제 조금은 환자들도 안정되고 마음의 여유도 조금은 생겨서 글을 써봅니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정말로 대 혼란이었어요.
상태가 너무 안 좋은 어르신분들도 계셨고,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다가 보호복까지
입으니 정신이 없었거든요. 고글에 김이 서려서 환자 이름도 눈에 안들어오고 대혼란이었죠.
그래서 환자들을 볼 때 거의 수치로만 구별했던 것 같아요.
Vital Sign 이라고 하죠. 기본적으로 혈압, 심박수, 체온, 산소포화도를 측정해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합니다.
이 중에서 코로나 환자는 체온과 산소포화도를 중요하게 봐요. 폐렴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항상 체온과 산소포화도를 봅니다.
환자의 얼굴과 이름도 매치가 안되고 그저 이름과 수치로 환자들을 만나고 처방을 내렸죠.
그런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자 할머니 할아버지들 얼굴과 성함이 익숙해지면서
아.. 이 할머니는 어디가 주로 아프셨지.. 저 할아버지는 지금 열이 오르는 게 문제였어..
라고 환자를 사람으로 보게 된 것 같아요.
조금은 여유로워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 저는 환자를 숫자로 생각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매트릭스 영화 보면 사람들이 0과 1로만 이루어진 숫자들로 보이잖아요.
저도 그러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래서 뭔가 치료를 하더라도 수치만 교정하려는 치료를
했지 그 이상의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아픈 곳을 듣고, 식사는 잘하
셨는지 숨은 크게 크게 잘 쉬시는지, 그리고 보호자들과 연락하면서 이분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 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하고, 제가 별로 해드리는 것도 없는데도
수고해줘서 고맙다는 보호자들의 감사인사를 듣고..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함께 있는
어르신들을 숫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 교정해야 하는 수치가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 나와 추억을 쌓아가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회진할 때도
예전에는 수치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교정을 위주로 하였다면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vital sign 과는 관계없지만 호소하는 증상들, 허리가 아프다거나 소화가
잘 안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으니까요.
우리가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할 때.. 사람을 숫자로 생각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의사의 경우에는 검사 수치로, 인스타를 할 때는 나의 팔로워 숫자를 늘려주는 1로,
물건을 판매 할 때는 내 통장에 늘어나는 돈으로..
그런데.. 사람을 숫자로 생각하게 되면 참 각박해지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나에게 의미
있는 숫자 이외에는 관심이 없어지거든요. 내가 이 사람에게 관심 있는 것은 혈압이니..
환자가 허리 아프거나 밥을 못 먹는 것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거나..
나는 이 사람에게 물건을 팔아서 돈만 받으면 되는데 자꾸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짜증이 난다거나.. 하듯이 말이죠.
하지만 그 사람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조금은 달라질 거예요.
나의 목표에 도움이 되는 1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리고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면 내가 하는 일에서 오는 의미가 달라질 거예요.
숫자가 내가 판매하는 물건에 대해 물어온다면 그건 내 목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낭비
이지만 나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 물어온다면 그건 즐거운 '대화'와 '소통'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되기까지 필요한 것은 소통이라는 경험인 것 같아요. 내가 상대하는 고객과 '소통'을
하고, 그 고객이 '사람'으로 느껴진 경험이 있다면... 그리고 그곳에서 일의 보람을 느끼고
의미를 발견한 경험이 있다면 앞으로도 그런 관계를 기대하고 맺어나가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이런 경험을 만들어보세요.
내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이 나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함께 소통하면서 감사를
나누고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죠.
처음에는 교정해야 할 수치로 보였던 환자들이 같이 이야기하고 추억을 공유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로 보였던 것처럼요.
이렇게 서로를 수치가 아닌 사람으로 본다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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